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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이음

이음광장 자립, 그 언저리 주체성의 자리

  • 김인규 작가
  • 등록일 2020-12-02
  • 조회수 148

진우가 수집한 핸드폰 공기계와 케이스
[사진제공] 필자

얼마 전 진우가 핸드폰을 새로 개통해왔다. 혼날 줄 알기에 며칠을 숨겨 사용하다가 발각되었다. 이미 몇 번째 일이다. 잘 쓰고 있는 핸드폰이 있는데도 불쑥 그런 일을 벌인다. 새 핸드폰을 갖고 싶은 거다. 그때마다 나는 핸드폰 가게에 가서 언성을 높이고 싸워야만 했다. 진우가 중증발달장애인이라는 점을 들어 계약이 잘못되었다고 따져야 한다. 장애인 요금할인을 받고 있기 때문에 계약 시 확인 가능한 사항이다.

그렇지만 가게 주인은 자기에겐 잘못이 없다고 주장한다. 성인이 직접 와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정당한 절차에 따라 계약서에 서명하여 판매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진우가 계약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서명했다고 생각하느냐 따지게 된다. 가게 주인은 진우 본인이 핸드폰을 선택했고, 자신은 그에 따른 부분을 설명하였고 계약서를 읽어보고 서명하라고 했으며, 진우가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뭔가 잘못되었다면 그쪽 사정이라고 말한다. 진우는 그런 심각한 상황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아빠와 가게 주인의 옥신각신이 어떤 무서운 소음처럼 들렸을지 모른다.

가게 주인의 말대로라면 진우가 핸드폰을 선택했고, 그는 그에 응했을 뿐이다. 진우의 주체성이 성립된 것이다. 어쩌면 진우를 그냥 돌려보냈다면 진우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핸드폰을 새로 구매했을 때 생기는 대가가 무엇인지 그에 따라 어떤 일이 생기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진우의 특성이 자리하고 있다. 계약 과정에서 진우의 행동을 조금만 관찰한다면 확인 가능한 부분이다. 그래서 가게 주인이 진우의 상황에 다가선다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가족과 통화를 하는 적극적인 시도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또한 이 모든 일이 보호자인 아빠의 입장이 아닐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아빠는 진우가 새 핸드폰을 개통해오는 것이 어떤 비용을 치르게 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위약금을 문다든가 더 큰 비용을 내야 한다든가 하는 일 말이다. 그런데 진우는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거기에는 핸드폰을 가지고 싶어 하는 진우의 욕구가 버티고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수많은 공기계를 가지고 있지만, 새 핸드폰을 또 갖고 싶고, 아빠가 그것을 가로막고 있다.

진우가 기차여행 하는 것을 부러워하는 또래 친구가 있다. 길에서 만나면 “나도 같이 기차 타고 싶어요.”라고 한다. 진우보다 사리분별을 잘해 혼자도 충분히 기차여행이 가능한 친구다. 올해 23살이다. 나는 “하고 싶으면 해.”라고 말했다가 급히 그 말을 거둬들이고 먼저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발달장애인인 그가 스스로 행동하는 것을 내가 성급히 조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는다기에 내가 직접 그들을 만나 권해보았지만 걱정하며 망설인다. 더는 권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거기에는 감당해야 할 것이 있고 책임이 따른다. 아마 그 모든 것이 나의 몫이 될 것이다. 진우를 혼자 내보낼 때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게 진우의 주체성을 보장하는 일이라고 여겼기에 가능했다. 진우 혼자 대처하기 어려운 만일의 사태를 우려한다면 선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역에 발달장애인 가족이 있다. 엄마, 딸, 아들, 이렇게 셋이 함께 산다. 아들은 장애가 약간 심한 상황이지만, 엄마와 딸은 그리 심하지 않다. 그래서 다른 돌봄 없이 셋이서 살아가고 있다. 종종 거리에서 마주치는데 같이 장도 보고, 영화도 보러 다니고, 때로는 나물을 캐러 다니기도 했다. 아들은 장애인보호작업장에 나가며 직업훈련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들이 거리에서 보이지 않았다. 최근 지역에 주간보호기관이 생기면서 그곳에 들어갔다고 한다. 기관 측에서 입소를 권했고 거기에 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들이 무척 만족스러워한다고 했다.

무언가 소일거리를 찾아 늘 방황을 하다가 한곳에 정착하여 제공되는 프로그램으로 소일하게 되니 만족스러울 것이라 생각되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게 그리 좋아 보이지만은 않았다. 그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던 때가 오히려 더 나아 보이는 것이다. 값어치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하루하루 무언가 할 거리를 찾아서 스스로 해내고, 아들은 보호작업장에서 직업훈련도 하며, 비장애인 공간 안에서 그렇게 독립적으로 살아가던 모습 말이다.

물론 그들은 스스로 주간보호기관을 선택했다. 그들이 그것을 선택할 만큼 충분한 돌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주간보호기관의 권유’라는 또 다른 주체가 자리하고 있다. 주간보호기관 담당자의 판단이 개입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주체성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와 같이 발달장애인의 판단과 결정은 비장애 영역과 마주하는 접점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의 주체성은 그것이 확장되거나 축소된다고 할 때, 단지 결정하는 행위에 있기보다는 결정 작용의 어떤 지점에 있다. 그리고 그 상호작용 속에서 늘 비장애 영역의 의지가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인데, 그렇다고 발달장애인 당사자에게 결정권을 준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돌봄 혹은 배려 그리고 그 주체성 사이에는 늘 어떤 긴장 관계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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