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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창작을 매개하는 활동

이슈 동료 시민으로 공존하기 위한 연결

  • 강보름, 고주영, 박지선, 이지혜 
  • 등록일 2021-07-28
  • 조회수1153

이슈

[좌담] 창작을 매개하는 활동

동료 시민으로 공존하기 위한 연결

강보름, 고주영, 박지선, 이지혜

개요

  • 일시 2021년 7월 15일(목) 오전 10시 30분

  • 장소 온라인(zoom)

참석자

좌장.

박지선 프로듀서, 프로듀서그룹 도트

패널.

강보름 연출, 배리어프리 매니저
고주영 프로듀서
이지혜 큐레이터

예술 현장에서 부딪치며 삶을 확장하기

박지선 : ‘매개인력’ ‘매개자’는 프랑스에서 모든 사람이 문화예술을 접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접근성 강화에 중점을 둔 문화민주화 정책의 맥락에서 시작되어 정책적으로 사용된 부분이 있어서 창작에서의 매개 활동을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관점과 방향이 달라지겠지만, 폭넓게 보았을 때 관계를 이어주는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창작자와 향유자를 연결하는 단순한 활동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문화예술 장애예술에서의 매개 활동에 대해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 나누고 좀더 이해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장애예술 작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고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

고주영 : 공연예술 프로듀서로 현실이나 제 삶과 동떨어지지 않은 작업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가 제 관심사이다. 그래서 당사자와 함께 공동작업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장애를 테마로 하거나 장애 예술인과 본격적으로 작업해본 적은 없다. 아직까지는 계속 축적하고 있는 과정이다. 장애를 구체적으로 접한 것은 2018년 극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이 서울 성북구 미아리예술극장 상주단체로 있을 때 함께한 작업이었다. 그 지역이 시각장애인이 많이 사는 곳이었고, 연출가는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대성당>이라는 시각장애인이 등장하는 작품을 공연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어떻게 무대화할 것인가 계획을 짜면서 시각장애를 가진 지역 주민이나 예술가를 만나고, 시각장애인 일일 활동지원에 참여하고, 감각을 경험할 수 있는 교육이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러면서 접근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공연장 접근성을 생각하며 임시경사로를 만들고, 정보 전달을 위해 음성 전단과 점자 전단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의미 있게 다가와 공부해보고 싶어 활동지원인 교육을 받았고, 그런 인연이 이어져 장애인 단체에서 일하게 됐다. 이런 과정이 새롭고 깨달음이 많았다.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했던 동료, 친구가 많이 생겨 저의 일상에 기쁜 일이기도 하다.

이지혜 : 저는 대안공간 등에서 전시하고 작가들과 작품 얘기 나누기를 좋아한다. 특히 스튜디오를 안정적으로 만드는 것, 이를테면 판을 계속 짜고 틀을 만드는 일을 중점적으로 해왔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지방으로 이사하게 되었고, 그 지역의 장애예술기관에서 일할 기회를 만들었다. 그곳에서는 비장애 기준에 작가들을 맞추려는 태도가 굉장히 많았다. “이렇게 그리면 작품이 될 수 없어” “이런 그림은 작업이 아니야”라며 작가들에게 계속 다른 방향의 작업을 요구했고, 작가들은 기관이 만들어준 틀에서 작업하는 것이다. 기관의 이런 태도와 싸워야 했고, 미술만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보호자들의 편견을 깨기 위해 사회복지사 공부를 했다. 교육과정에는 현장실습이 포함되는데, 정신장애인 사회복지시설을 택해 일하면서 발달장애인과 정신장애인은 매우 다른 문화예술 환경에 놓인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후 퇴사하고 공부를 하던 중 발달장애 작가의 부모들이 직접 법인을 설립하고 싶다고 도움을 요청해서 ‘로아트’ 설립을 도왔다. 장애예술이 처음부터 나의 일이 되고 나의 전문성을 갖게 되는 분야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고, 현장에서 부딪치면서 새롭게 현장을 만들어나가는 시도를 했던 것 같다.

강보름 : 저도 연출가나 창작자로서 넓은 의미에서 ‘매개’ 활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질문을 가지고 창작을 시작하게 되었다. 작업을 시작하면서 청년예술가, 신진예술가로 호명되는 경우가 많았고 ‘계’에 진입하는 것에 몰두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러면서 한계를 많이 느꼈다. 그 시점에 장애인 창작자나 0set(제로셋) 프로젝트의 스태프로 참여해 함께 작업하면서 내가 누구와 연결되고 싶은가를 더 고민하게 되었다. 계가 분리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동료가 되려면 창작자인 내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계를 확장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면서 공연 작품 제작만이 아니라 워크숍, 리서치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극단 애인과도 작업하게 되었다. 제가 창작활동을 시작하자마자 만난 분들을 통해 저의 좁았던 시야를 확장하는 기회가 되었다. 연출가로서 장애인 창작자들과 함께한 작업은 이번 달에 공연하는 <여기, 한때, 가가>가 첫 작업이다. 연출가로서는 많은 것을 책임져야 하고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하다 보니, 제가 준비되는 시간이 필요했고 조금은 자신감이 생긴 후에 작업을 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제 관심사를 배우들과 소통하면서 작업했는데, 장애인 창작자들과 작업하면서는 그들의 욕구나 관심에서 출발했다. 저도 전환되는 경험이 있어서 재밌게 작업하고 있다.

근본을 질문하는 매개 활동

박지선 : 요즘 매개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고, 기획자 양성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장애 예술 영역에서 일하거나 장애와 비장애를 연결하는 영역에서 일할 때 공부도 많이 필요한 것 같다. 이지혜 큐레이터님은 충북 장애인 예술 매개자 양성과정 <렛잇비 Let it be>에 멘토로 참여하셨는데, 어떤 질문을 던졌고, 어떤 것을 발견하셨나.

이지혜 : 현장에서 장애인을 만나고 교감하면서, 장애가 내 삶에서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내 삶과 같이 있는 것임을 느끼는 과정은 시간이 걸린다. 그것을 몸으로 체감하고 느끼는 것도 다르고, 매번 자신의 편견, 자신의 장애감수성에 대한 자부심이 깨지는 순간을 맞닥뜨리는 것 같다. 이런 과정을 반복해서 경험하게 된다. 한편으로 매개자 양성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는 간극이 있었다. 이들 중에는 장애인을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이 다수였고, 양성과정을 일자리 만들기 사업으로 생각하고 온 사람도 있었다. 양성과정에서 수행했던 실천연구로 제시된, 자기 주변의 장애인과 예술적인 활동을 해보자는 주제 앞에서, 이들의 가장 큰 고민은 ‘내 주변에는 장애인이 없다’ ‘어디를 가야 장애인을 만날 수 있나’였다. 거꾸로 왜 내 주변에 장애인이 없었지, 우리가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장애인은 누가 있지 이런 식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질문의 시간이었다. 나름대로 즐거웠고 의미는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장애예술 매개자를 양성하려면 단계가 필요하고, 당사자와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어야 전문성을 갖출 수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 프로그램을 2년 동안 진행했는데, 2년 차에는 본격적으로 편견과 싸우는 장이었다. 일례로, 장애인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기획해보는 과정에서 한 참여자는 마술교육을 제안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이분에게 매개란 장애인의 생계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었다. 장애 유형이 굉장히 다양한데, 그것을 묶어서 장애를 바라보는 것에서 발생하는 오류도 있었다. 한편, 기획자나 장애 예술인과 함께하는 사람들은 장애인 작가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에 대해 경계하는데, 오히려 그것이 더 편견 같다. 저 역시 엄마에게, 선생님에게, 주변 동료에게 영향을 받는 게 당연한데, 영향에 대한 불안 때문에 오히려 장애인이 직접 경험할 기회를 절삭하고 제공하는 것이 많다.

박지선 : 강보름 연출님은 배리어프리 매니저 또는 접근성 매니저라는 이름으로 작업에 참여하기도 하셨다. 이런 역할을 하면서 마주친 질문과 어려움은 어떤 것이 있었나.

강보름 : 제가 배리어프리 매니저나 접근성 매니저로 참여할 경우 연극단체나 작업자의 필요로 구성되는 역할인데, 작업에 참여하면 항상 부딪치는 지점은 비슷하다. 저는 배리어프리 매니저의 역할이 배리어프리가 최우선 목표가 된다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관객과 잘 만날 수 있을지 방법을 같이 고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작팀의 욕구와 지향하는 목표를 이해하는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다. 작업자의 작업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배리어프리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서로 다른 얘기를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배리어프리 관련 예산도 미리 분배되어야 하는데, 작업자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어서, 의견은 낼 수 있지만 어디까지 주장해야 하나 고민된다. 처음은 선한 의도에서 시작할 수 있지만, 장애인 창작자를 만나다 보면 적당히 타협하는 선에서 그치면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요즘 연극계에서 유행처럼 배리어프리 담론이 도는데, 장애 감수성이 없는 상태에서 배리어프리 공연을 만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도 들고, 장애 감수성을 잘 알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 이런 고민의 시간이 저에게도 필요한 것 같다.

박지선 : 배리어프리는 예술을 어떻게 창작하고 누구와 향유할 것인지 큰 범주에서의 철학이기 때문에 생각의 전환이 있을 때 창작 안에서부터 이렇게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고주영 피디님은 ‘발달장애인 대상 릴랙스드 퍼포먼스’ 개발을 위한 리서치를 진행 중이신데, 장애예술 작업을 할 때 비장애 예술과의 차이점이나 고려할 부분이 있었나. 어떤 관점에서 창작 작업을 바라봐야 할까.

고주영 : 예술도 알고 장애도 알고 오랜 시간이 축적되어야 할 것이다. 저는 기획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서 작업을 하는데, 거기에 ‘장애’라는 요소가 들어왔다고 해서 변하면 안 되는 것 같다. 무언가가 확 달라져야 하는 것이 오히려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장애뿐만 아니라 당사자를 만나서 작업할 때 필요한 마인드셋을 얼마만큼 놓치지 않고 가느냐가 핵심일 것 같다. 다만 다르다면 의사소통을 할 때 어떤 화술을 사용해야 되는지 아는 차이 정도일 것 같다. 기본적으로 장애예술 매개자로서 필요한 게 아니라 장애인과 살아가는 이웃으로서 가져야 할 태도일 텐데, 문제는, 그런 태도까지도 교육받지 못했고, 자란 후에도 배울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그런 문제를 인식했다면 우리가 습득해야 하는 것은 장애예술 매개자로서의 어떤 기술이 아니라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소통방식일 것이다.

강보름 : 장애인·비장애인 창작자에게서 제가 왜 장애예술에 관심을 갖고 활동을 하는지 질문을 많이 받는다. 사실 계기는 정말 특별하지 않다. 투철한 신념도 별로 없다. 작업을 하다 만난 동료들과 함께하는 게 재미있어서다. 소수자 여성으로서 예술계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연극 작업을 계속하다가 장애인 동료들을 만나면서 소수자이기만 한 게 아니라 어떤 측면에서는 다수자임을 깨달은 것이 제 생각을 전환하는 계기였다. 누구와 작업을 하느냐에 따라 과정도 결과물도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장애인 동료들과 함께 작업하면 관객을 만나는 순간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다. 함께 작업을 하다보면 동료 작업자의 일상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동료관계를 넘어서는 친구관계가 되기도 한다. 시민으로서 저의 장애 감수성을 기르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래서 예술, 장애예술을 어떻게 담론화할지 고민을 놓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천이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이지혜 : 제가 편견에 대해 자꾸 리마인드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저 역시 장애인 작가의 작업을 볼 때 예술에 대한 관점과 장애에 대한 관점이 섞여 고정관념의 방해를 받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장애예술에는 ‘고유성이 있다’고 말하곤 했는데, 지금은 ‘고유성은 없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저는 작가의 작품을 SNS에 자주 포스팅 한다. 오랫동안 작업을 해온 60세가 넘은 비장애인 작가와 장애인 작가의 작품을 장애 유무를 드러내지 않고 출생년도와 이름만 드러내는 식이다. 이것을 본 지인들은 제가 평소에 장애인 작가와 작품을 많이 하는 것을 알기에 이들이 모두 장애인 작가인 줄 안다. 사람들은 낯설면 장애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절단장애를 가진 신체로 춤추는 것을 처음 봤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워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기이하고 낯선 이미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워한다. 사실 굉장히 모던하고 새로움을 찾는 작업들인데.

고주영 : 사람들은 책을 읽거나 영화나 공연을 보면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나와 공통된 생각이나 경험을 갖고 있는 것에 몰입해서 나의 생각을 강화하거나 나와 다른 생각이나 경험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저는 대체로 전자에 가깝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은 누구일까, 내 편은 누구일까 생각하며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장애인이 창작하거나 공연한 작품을 보러 가면 차이에 대한 발견을 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온다. 우리는 똑같이 30대의 서울에 사는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장애가 있음과 없음에 따라 경험치가 너무 다르다. 예를 들어 서사만 봤을 땐 사소한 연애문제일 수 있지만, ‘시설’에 있었다는 전사가 나오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사소한 문제가 아니게 된다. 장애 창작자의 공연을 보면서 경험치가 서로 다르고 신체성이 다른 것에서 오는 차이를 계속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면서 이 사회가 얼마나 비장애인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었는지, 장애인이 얼마나 차별을 받고 권리를 박탈당하는지 들여다보게 된다.

확장되는 질문으로 나아가는 접근성

박지선 : 창작을 매개하는 활동과 장애 예술을 얘기하다 보면 접근성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2019년에 영국 장애인 극단 그라이아이의 접근성 워크숍에 참여했었다. 단계별로 수어로 자기를 표현하는 방식과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관한 내용이다. 극장 무대에 동그랗게 둘러서서 의견을 나누는데, 사람들이 활발하게 의견을 내지 않고 조용한 상태였다. 그때 그라이아이의 워크숍 리더가 갑자기 무대감독에게 “조명을 좀 낮춰주세요”라고 요청하고, “다같이 모이세요”라고 말하며 우리를 극장의 구석으로 몰고 갔다. 약간 어두운 상황에서 아늑한 분위기가 되니 사람들이 자기 얘기를 하게 되는 모습을 보았다. 물리적 접근성뿐만 아니라, 어떻게 사람들이 더 대화하게 하고 자기를 표현하게 할까, 어떤 환경을 만들어야 사람들이 편안해할까 하는 고려가 몸에 배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던 경험이었다. 접근성 측면에서 장애 예술가가 창작 과정에서 창작의 주체로 설 수 있으려면 어떤 것을 고려해야 할까. 그리고 장애 예술인과 비장애 예술인 협업에서는 어떤 것을 고려해야 할까.

강보름 : 연출가로서 작업할 때 물리적 접근성을 포함해서 심리적 안전감, 심리적 접근성은 장애인 창작자만이 아니라 비장애인 창작자까지 포함해 서로를 위해 필요한 작업이었다. 저는 미투 운동을 계기로 사람들과 함께 프로덕션 규칙 같은 것을 만들고 연습을 시작한다. 이러한 규칙이 작업자에게 꼭 지켜야 하는 강박이 아니라 심리적 안정감을 위한 기제로 작용하는 것을 많이 느꼈다. 기초적인 물리적인 접근성부터 시작해서, 장애 감수성이 없는 상황을 직면할 때면 물꼬를 트는 것을 포함한 작업을 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많이 배우게 된다. 7월말 개막하는 공연을 준비하면서 대사량을 놓고 어떻게 언어장애가 있는 배우를 고려할지, 관객은 어떻게 잘 들을 수 있을지 방법을 함께 고민했는데, 이때 엄청 솔직하게 동료 배우들과 터놓고 얘기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고려’하는 것과 ‘배려’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우리는 통상적으로 ‘배려’라고 생각했던 것을 안 해보기 시작했다. 배우들이 몸을 풀고 입을 푸는 방법을 장애인·비장애인 상관없이 해보기도 하고, 낭독할 때 시간이 많이 걸려도 반복해서 들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편견으로 인해 놓칠 만한 부분을 확인하고, 놓친 곳은 피드백 받으면서 방향을 수정하기도 했다. 그런 과정이 재미있었다. 심리적 안정감에 관련해서는 의사소통 방법이나 방식, 개인의 취향 같은 사소한 것까지 물어본다. 연극 작업을 하다보면 공연을 무대에 잘 올려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프로세스에만 집중하게 되고, 고유한 작업자 개인에 대한 관심을 놓치기 쉽다. 비건 도시락 수요를 조사해서 같이 주문하기, 연습실을 빌릴 때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턱이 없는 연습실을 빌려야 하는 상황에서 장애인 동료도 자신 때문에 비장애인 동료가 사서 고생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불편감 없이 요구하고 불편감 없이 요구를 수용하기 등 모든 게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부분은 기본적인 의사소통 태도가 되어 있어야 가능하기에, 의사소통 연습까지도 제작방법론 또는 제작 과정 안에 있어야 되는 것 같다.

이지혜 : 작가들은 자기 작업실이 있어서 언제든 다음에 와서 작업을 이어서 진행할 수 있어야 영감이 올 때 집중해서 작업할 수 있다. 작가들이 전문가나 보호자(대체로 부모) 없이 혼자 작업하다 보면 그리라는 것을 그리게 된다거나 수동적인 입장에 처하게 된다. 작업에 몰입하다보면 자기 방에만 머물게 되고, 혼자 작업할 때 퇴행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공용 작업실이 있어야 한다. 하루의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작업실에서 언제든 동료를 만나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기관에서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경우에도 기관 담당자나 내부 인력이 출근하는 시간에만 작가들이 작업실에 올 수 있고, 출근하는 시간에만 관리하는 형식은 안 된다. 그게 제가 생각하는 작가 중심 스튜디오의 모습이다. 그렇게 공간이 만들어졌으면 사람들이 많이 와야 한다. 작가들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에서 다른 세계를 계속 유입시키고 연결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예술은 결국 과정과 행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지원이 중요하다. 전문성이나 기술 지원이 아니라 네트워크나 인프라 같은 사람 자체의 연결이 중요하다. 지금 가장 중요한 예술 혹은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예술을 잘 다루는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이들에게도 관심이 많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주는 것이다.

박지선 : 창작의 매개 활동에 있어서 세계와 연결은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창작의 세계에 들어오는 사람이 다른 창작자일 수도 있고, 평론가일 수도 있다. 그리고 창작 이후에 관객을 만나는 데 있어서 물리적 접근성뿐만 다른 측면도 있을 것 같다. 또 어떤 방식의 접근성을 고려해야 할까.

고주영 : 공연장 혹은 공연에 대한 물리적 접근성에 대한 고민은 연극에서도 아직 굉장히 일부이다. 그런데 그것이 점점 매뉴얼화되고 있는 것 같다. 가 닿을 대상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은 채, 우리가 해야 될 몫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게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저희가 3년짜리 중장기 워크숍 프로젝트를 하면서, 2년차에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릴랙스드 퍼포먼스 개발 측면에서 배리어프리 공연을 이야기하는데, 여기에도 매뉴얼화된 가이드가 많았다. 암전을 두지 않는다, 오는 길을 설명해줘야 한다 같은. 여기에 의구심이 들면서 발달장애인과 함께 연극 관람모임과 작은 연극 만들기 워크숍을 했다. 관람 모임을 해보니 신체적으로 공연장까지의 이동에는 문제없었다. 조력을 받건 혼자서 오건 대학로의 공연장까지 올 수 있는 사람은 말로 표현되는 연극도 잘 이해했다. 공연 중간의 암전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사실 매뉴얼의 가이드는 하나도 들어맞지 않았던 거다. 발달장애의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에 누군가 특정 사람에게는 그 매뉴얼이 들어맞겠지만, 이들에게는 아무것도 배리어가 되지 않았다. 정작 문제는 이들을 위해 쉽게 공연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정보 접근성이 일단 떨어지고, 연극 장르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고, 정보를 쉽게 풀어주었을 때도 어떤 맥락을 가지고 공연을 결정할지 이 안에 이미 너무 많은 배리어가 있다. 예를 들면, 방구 안 뀌고 트름을 참을 수 있는 자기의 시간은 1시간 반이라거나, 시설에 살았기 때문에 판타지 연극을 좋아하는 등의 자기 맥락이 있는데, 이런 것은 다 빼고 물리적 접근성만을 확보했다고 해서 이들에게 배려와 배리어프리, 릴랙스드 퍼포먼스라고 설명할 수 있나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더 넓은 범위에서 그들의 삶까지도 고려하는 것이 접근성에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

강보름 : 제가 연출로서 작업하는 경향성은 두 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다. 작가의 희곡을 드라마화해서 무대화하는 것과 다큐멘터리 공연처럼 당사자의 삶을 연극 무대화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후자의 경우 배우가 어떤 질문을 가지고 어떤 이야기로 사람들과 만나고 싶은지를 같이 찾고, 그것이 관객과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를 같이 찾는 게 연출의 역할인 것 같다. 그럴 때면 항상 당사자성과 관련해서, 이 질문이 관객에게 의미가 있는 질문인가, 혹은 어떤 새로운 전환이 생기는 질문인가이다 생각하게 된다. 창작자와 협업을 할 때, 무조건적인 당사자성을 벗어나서 장애인 창작자 본인이 가진 이야기나 질문이 어떻게 들리는지 재해석하고 이야기 나누며, 필요하다면 환기에 대해서도 같이 고민해야 한다. 당사자가 공연에서 던진 질문이 꼭 필요한 질문이었는지, 그 공연이 장애인 관객에게도 필요한 공연이었는지 생각해보게 된 공연이 있었다. 생물학적 당사자성에 국한되는 질문을 던진 경우 어쩌면 장애인 관객에게는 상처가 되는 질문이었을 수도 있다. 장애인 관객을 만나는 것과 비장애인 관객을 만난다는 것이 아주 다른 것은 아니지만 당사자의 삶을 다루고 무대화할 때는 연출가로서 정치적 당사자성 혹은 사회적 당사자성으로 확장되는 질문으로 나아가도록 고려해야 하는 지점을 생각하게 되었다.

동료 시민으로 공존하기

박지선 : 장애를 알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는 시간의 경험이 필요하고, 같이 창작하고 함께 소통하고자 하는 사람 개개인의 고유성을 알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물리적 접근성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태도의 변화 없이 매개 인력도 정책 용어로만 사용되고 모든 것이 기계적으로 매뉴얼화되는 것에 대한 문제점도 말씀해주셨는데. 장애예술 매개 활동에서 필요한 역할과 지원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지혜 : 현재 진행중인 전시 <길은 너무나 길고 종이는 조그많기 때문에>는 발달장애와 정신장애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데, 몇 작가의 작업과정과 삶을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기획 당시에는 영상이 너무 설명적이 될까봐 우려도 있었는데, 전시 관객이 남긴 리뷰를 보면 발달장애인의 움직임과 행동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 같아 좋았다. 0.3미리의 연필로 세밀하게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경우 손목이 아파 한 번씩 손목을 돌리는 장면이나, 시설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아무렇지도 않게 달라고 해서 주고나면 소진되는 느낌이 들어 작업하기 싫다고 말하는 장면 같은, 작가라면 공통적으로 느꼈을 감정과 삶의 모습 등 작가의 발화와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장애 예술가의 작업을 볼 기회도 많지 않고 관객이 일부러 찾는 경우도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사람들이 곳곳에서 장애예술 작가와 작업을 만날 수 있는 기회 혹은 단서를 포진하는 것도 중요하다. 공공에서 장애 예술인에게 더 많은 창작과 발표 기회를 제공해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창작공간에 대한 논의가 많이 나오는데, 미술작가를 위한 스튜디오에 대해 구체적으로 세분화해서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는 자리가 많이 마련되어야 한다. 창작공간의 체계와 시스템, 운영기관 등 인프라 조성과 관련한 이야기는 굉장히 많은데 거시적인 이야기만 하다가 끝나는 느낌이다.

고주영 : 저는 장애인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결국 어떻게 하면 동료 시민으로 같이 잘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서로가 서로를 만날 기회가 더 늘어나야 한다. 공연을 보러 가면 장애인 극단의 공연에는 장애인 관객이 압도적으로 많고 비장애인 극단의 공연에는 비장애인 관객이 압도적으로 만다. 장애인 극단의 경우 신생 단체가 많고 제작자나 기획자를 두지 못하고, 공연티켓도 티켓판매 시스템을 이용기보다는 알음알음 판매한다. 그래서 공연정보를 접하기가 어렵다. 비장애인 예술가도 장애인 예술가의 공연을 보러 가고, 장애인 예술가도 비장애인 예술가의 공연을 많이 볼 수 있어야 한다. 많이 볼 수 있게 해주려면 우선적으로 물리적 접근성이 해결되어야 한다. 여기에 공적인 지원이 들어가야 한다. 특히나 대학로 소극장은 접근성 문제가 절실히 필요하다. 예산을 지원할 테니 알아서 하라는 방식이 아니라, 그러한 장치들이 좀더 완성도 높게 구축되고 잘 활용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강보름 : 저도 두 분 말씀에 동의한다. 큰 틀에서 경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연출가로서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작업을 많이 해보고 싶고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다른 비장애인 동료들에게도 추천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장애인 배우를 캐스팅하면 장애인 관객이 온다. 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해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는 연습실이 폐쇄되어 사용할 수 있는 곳이 몇 개 없다. 대학로 일대 역시 이음센터나 아르코예술극장도 코로나19가 심각할 때는 폐쇄해서 비싼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고, 그렇게도 구하기 어려워 서로에게 미안해지는 경험이 많았다. 0set프로젝트가 꾸준히 접근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왔고 많은 공공기관도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이제는 공공기관도 바꾸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이지혜 : 예전에 해외에서 장애인 배우 에이전시의 매뉴얼을 본 적이 있는데, 인상적인 문장이 있었다. ‘내 아이덴티티를 바꿔서 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언어장애인이면 사이코패스 언어장애인 캐릭터가 있을 수 있고 고루한 언어장애인 캐릭터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시각예술만큼이나 공연예술에서 고려할 지점이 많겠다는 생각을 했다.

박지선 : 창작에서의 매개 활동 관련해서 정책적으로 인력을 양성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다. 그런데 이에 앞서 장애도 알고 예술도 알아야 하고, 물리적·심리적 접근성만큼이나 중요한 게 경험 접근성이라는 것을 공통적으로 말씀해주셨다. 동료 시민으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경험이 쌓여야 장애예술에서의 매개 활동도 활발하게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창작에 있어서 누구와 만날 것인가 어떻게 만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겠다. 장애예술 창작은 한 명이 매개자가 되어 만들어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예산지원이나 인력지원에서 폭넓은 생각과 다양한 지원이 고려되기를 바란다.

강보름

연극연출, 드라마터그, 접근성/배리어프리 매니저. <레디메이드 인생> <모던걸타임즈> <여기, 한때, 가가> 등을 연출했다. 혜화동1번지 7기동인 가을페스티벌 ’맞춤‘ 접근성 매니저, 한일공동연출 프로젝트 <어느 마을> 배리어프리 매니저, <액트리스 원> <액트리스 투> 배리어프리 자문을 맡았다. 웹진 연극人 편집위원(2019)을 지냈고, 국립극단 창작공감 : 2021 ‘장애와 예술’ 연출로 선정되었다.
rkdekdzhd@hnamial.net

고주영

독립 프로듀서, 플랜큐 PD, 한-일 번역가. 장소특정적이거나 다원적인 방식의 공연을 기획하고 만든다. 사회적 소수자 당사자와 함께 무대화하는 데 관심이 있다. 장애 예술 관련하여 연극 <대성당>(2018, 여당극), <장애인 공연장 내 재난대피 워크숍>(2020, 김원영 김지수), <발달장애인 대상 릴랙스드 퍼포먼스 개발 중장기 프로젝트>(2019~현재) 등이 있다. 2019년부터 발달장애인 권리옹호단체 반상근 활동가이다.
breeeeze@naver.com

박지선

연극, 무용, 다원,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걸쳐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 축제, 레지던시 기획, 공연예술작품 제작 및 국제 네트워크를 기획, 운영하고 있다. <포용적 접근의 장애예술 창작 개발과 관객 개발> 리서치 및 워크숍, <무용음성해설(Dance Audio Description> 워크숍 등 기획 운영했다. 도시, 경계, 기술과 예술 등 다양한 주제로 예술가와 새로운 탐험을 하며 동시대성을 탐구하고 있다. 이음온라인 기획위원.
jisunarts@yahoo.com

이지혜

작가와 소규모 전시공간을 사랑하는 독립큐레이터다. 2016년부터 정신적 장애를 가진 작가들과 활동했으며 2019년에는 사단법인 로아트 설립을 주도했다. 문화매개를 공부하며 보다 자유로운 예술 행위를 위한 실천 방법론을 연구 중이다. 사단법인 로아트 기획팀장, 대야미스튜디오 큐레이터로 일했으며, 현재 경희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depth1212@gmail.com

정리.프로젝트 궁리

2021. 8월 (22호)

상세내용

이슈

[좌담] 창작을 매개하는 활동

동료 시민으로 공존하기 위한 연결

강보름, 고주영, 박지선, 이지혜

개요

  • 일시 2021년 7월 15일(목) 오전 10시 30분

  • 장소 온라인(zoom)

참석자

좌장.

박지선 프로듀서, 프로듀서그룹 도트

패널.

강보름 연출, 배리어프리 매니저
고주영 프로듀서
이지혜 큐레이터

예술 현장에서 부딪치며 삶을 확장하기

박지선 : ‘매개인력’ ‘매개자’는 프랑스에서 모든 사람이 문화예술을 접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접근성 강화에 중점을 둔 문화민주화 정책의 맥락에서 시작되어 정책적으로 사용된 부분이 있어서 창작에서의 매개 활동을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관점과 방향이 달라지겠지만, 폭넓게 보았을 때 관계를 이어주는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창작자와 향유자를 연결하는 단순한 활동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문화예술 장애예술에서의 매개 활동에 대해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 나누고 좀더 이해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장애예술 작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고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

고주영 : 공연예술 프로듀서로 현실이나 제 삶과 동떨어지지 않은 작업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가 제 관심사이다. 그래서 당사자와 함께 공동작업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장애를 테마로 하거나 장애 예술인과 본격적으로 작업해본 적은 없다. 아직까지는 계속 축적하고 있는 과정이다. 장애를 구체적으로 접한 것은 2018년 극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이 서울 성북구 미아리예술극장 상주단체로 있을 때 함께한 작업이었다. 그 지역이 시각장애인이 많이 사는 곳이었고, 연출가는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대성당>이라는 시각장애인이 등장하는 작품을 공연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어떻게 무대화할 것인가 계획을 짜면서 시각장애를 가진 지역 주민이나 예술가를 만나고, 시각장애인 일일 활동지원에 참여하고, 감각을 경험할 수 있는 교육이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러면서 접근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공연장 접근성을 생각하며 임시경사로를 만들고, 정보 전달을 위해 음성 전단과 점자 전단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의미 있게 다가와 공부해보고 싶어 활동지원인 교육을 받았고, 그런 인연이 이어져 장애인 단체에서 일하게 됐다. 이런 과정이 새롭고 깨달음이 많았다.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했던 동료, 친구가 많이 생겨 저의 일상에 기쁜 일이기도 하다.

이지혜 : 저는 대안공간 등에서 전시하고 작가들과 작품 얘기 나누기를 좋아한다. 특히 스튜디오를 안정적으로 만드는 것, 이를테면 판을 계속 짜고 틀을 만드는 일을 중점적으로 해왔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지방으로 이사하게 되었고, 그 지역의 장애예술기관에서 일할 기회를 만들었다. 그곳에서는 비장애 기준에 작가들을 맞추려는 태도가 굉장히 많았다. “이렇게 그리면 작품이 될 수 없어” “이런 그림은 작업이 아니야”라며 작가들에게 계속 다른 방향의 작업을 요구했고, 작가들은 기관이 만들어준 틀에서 작업하는 것이다. 기관의 이런 태도와 싸워야 했고, 미술만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보호자들의 편견을 깨기 위해 사회복지사 공부를 했다. 교육과정에는 현장실습이 포함되는데, 정신장애인 사회복지시설을 택해 일하면서 발달장애인과 정신장애인은 매우 다른 문화예술 환경에 놓인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후 퇴사하고 공부를 하던 중 발달장애 작가의 부모들이 직접 법인을 설립하고 싶다고 도움을 요청해서 ‘로아트’ 설립을 도왔다. 장애예술이 처음부터 나의 일이 되고 나의 전문성을 갖게 되는 분야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고, 현장에서 부딪치면서 새롭게 현장을 만들어나가는 시도를 했던 것 같다.

강보름 : 저도 연출가나 창작자로서 넓은 의미에서 ‘매개’ 활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질문을 가지고 창작을 시작하게 되었다. 작업을 시작하면서 청년예술가, 신진예술가로 호명되는 경우가 많았고 ‘계’에 진입하는 것에 몰두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러면서 한계를 많이 느꼈다. 그 시점에 장애인 창작자나 0set(제로셋) 프로젝트의 스태프로 참여해 함께 작업하면서 내가 누구와 연결되고 싶은가를 더 고민하게 되었다. 계가 분리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동료가 되려면 창작자인 내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계를 확장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면서 공연 작품 제작만이 아니라 워크숍, 리서치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극단 애인과도 작업하게 되었다. 제가 창작활동을 시작하자마자 만난 분들을 통해 저의 좁았던 시야를 확장하는 기회가 되었다. 연출가로서 장애인 창작자들과 함께한 작업은 이번 달에 공연하는 <여기, 한때, 가가>가 첫 작업이다. 연출가로서는 많은 것을 책임져야 하고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하다 보니, 제가 준비되는 시간이 필요했고 조금은 자신감이 생긴 후에 작업을 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제 관심사를 배우들과 소통하면서 작업했는데, 장애인 창작자들과 작업하면서는 그들의 욕구나 관심에서 출발했다. 저도 전환되는 경험이 있어서 재밌게 작업하고 있다.

근본을 질문하는 매개 활동

박지선 : 요즘 매개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고, 기획자 양성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장애 예술 영역에서 일하거나 장애와 비장애를 연결하는 영역에서 일할 때 공부도 많이 필요한 것 같다. 이지혜 큐레이터님은 충북 장애인 예술 매개자 양성과정 <렛잇비 Let it be>에 멘토로 참여하셨는데, 어떤 질문을 던졌고, 어떤 것을 발견하셨나.

이지혜 : 현장에서 장애인을 만나고 교감하면서, 장애가 내 삶에서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내 삶과 같이 있는 것임을 느끼는 과정은 시간이 걸린다. 그것을 몸으로 체감하고 느끼는 것도 다르고, 매번 자신의 편견, 자신의 장애감수성에 대한 자부심이 깨지는 순간을 맞닥뜨리는 것 같다. 이런 과정을 반복해서 경험하게 된다. 한편으로 매개자 양성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는 간극이 있었다. 이들 중에는 장애인을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이 다수였고, 양성과정을 일자리 만들기 사업으로 생각하고 온 사람도 있었다. 양성과정에서 수행했던 실천연구로 제시된, 자기 주변의 장애인과 예술적인 활동을 해보자는 주제 앞에서, 이들의 가장 큰 고민은 ‘내 주변에는 장애인이 없다’ ‘어디를 가야 장애인을 만날 수 있나’였다. 거꾸로 왜 내 주변에 장애인이 없었지, 우리가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장애인은 누가 있지 이런 식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질문의 시간이었다. 나름대로 즐거웠고 의미는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장애예술 매개자를 양성하려면 단계가 필요하고, 당사자와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어야 전문성을 갖출 수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 프로그램을 2년 동안 진행했는데, 2년 차에는 본격적으로 편견과 싸우는 장이었다. 일례로, 장애인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기획해보는 과정에서 한 참여자는 마술교육을 제안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이분에게 매개란 장애인의 생계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었다. 장애 유형이 굉장히 다양한데, 그것을 묶어서 장애를 바라보는 것에서 발생하는 오류도 있었다. 한편, 기획자나 장애 예술인과 함께하는 사람들은 장애인 작가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에 대해 경계하는데, 오히려 그것이 더 편견 같다. 저 역시 엄마에게, 선생님에게, 주변 동료에게 영향을 받는 게 당연한데, 영향에 대한 불안 때문에 오히려 장애인이 직접 경험할 기회를 절삭하고 제공하는 것이 많다.

박지선 : 강보름 연출님은 배리어프리 매니저 또는 접근성 매니저라는 이름으로 작업에 참여하기도 하셨다. 이런 역할을 하면서 마주친 질문과 어려움은 어떤 것이 있었나.

강보름 : 제가 배리어프리 매니저나 접근성 매니저로 참여할 경우 연극단체나 작업자의 필요로 구성되는 역할인데, 작업에 참여하면 항상 부딪치는 지점은 비슷하다. 저는 배리어프리 매니저의 역할이 배리어프리가 최우선 목표가 된다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관객과 잘 만날 수 있을지 방법을 같이 고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작팀의 욕구와 지향하는 목표를 이해하는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다. 작업자의 작업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배리어프리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서로 다른 얘기를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배리어프리 관련 예산도 미리 분배되어야 하는데, 작업자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어서, 의견은 낼 수 있지만 어디까지 주장해야 하나 고민된다. 처음은 선한 의도에서 시작할 수 있지만, 장애인 창작자를 만나다 보면 적당히 타협하는 선에서 그치면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요즘 연극계에서 유행처럼 배리어프리 담론이 도는데, 장애 감수성이 없는 상태에서 배리어프리 공연을 만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도 들고, 장애 감수성을 잘 알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 이런 고민의 시간이 저에게도 필요한 것 같다.

박지선 : 배리어프리는 예술을 어떻게 창작하고 누구와 향유할 것인지 큰 범주에서의 철학이기 때문에 생각의 전환이 있을 때 창작 안에서부터 이렇게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고주영 피디님은 ‘발달장애인 대상 릴랙스드 퍼포먼스’ 개발을 위한 리서치를 진행 중이신데, 장애예술 작업을 할 때 비장애 예술과의 차이점이나 고려할 부분이 있었나. 어떤 관점에서 창작 작업을 바라봐야 할까.

고주영 : 예술도 알고 장애도 알고 오랜 시간이 축적되어야 할 것이다. 저는 기획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서 작업을 하는데, 거기에 ‘장애’라는 요소가 들어왔다고 해서 변하면 안 되는 것 같다. 무언가가 확 달라져야 하는 것이 오히려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장애뿐만 아니라 당사자를 만나서 작업할 때 필요한 마인드셋을 얼마만큼 놓치지 않고 가느냐가 핵심일 것 같다. 다만 다르다면 의사소통을 할 때 어떤 화술을 사용해야 되는지 아는 차이 정도일 것 같다. 기본적으로 장애예술 매개자로서 필요한 게 아니라 장애인과 살아가는 이웃으로서 가져야 할 태도일 텐데, 문제는, 그런 태도까지도 교육받지 못했고, 자란 후에도 배울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그런 문제를 인식했다면 우리가 습득해야 하는 것은 장애예술 매개자로서의 어떤 기술이 아니라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소통방식일 것이다.

강보름 : 장애인·비장애인 창작자에게서 제가 왜 장애예술에 관심을 갖고 활동을 하는지 질문을 많이 받는다. 사실 계기는 정말 특별하지 않다. 투철한 신념도 별로 없다. 작업을 하다 만난 동료들과 함께하는 게 재미있어서다. 소수자 여성으로서 예술계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연극 작업을 계속하다가 장애인 동료들을 만나면서 소수자이기만 한 게 아니라 어떤 측면에서는 다수자임을 깨달은 것이 제 생각을 전환하는 계기였다. 누구와 작업을 하느냐에 따라 과정도 결과물도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장애인 동료들과 함께 작업하면 관객을 만나는 순간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다. 함께 작업을 하다보면 동료 작업자의 일상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동료관계를 넘어서는 친구관계가 되기도 한다. 시민으로서 저의 장애 감수성을 기르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래서 예술, 장애예술을 어떻게 담론화할지 고민을 놓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천이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이지혜 : 제가 편견에 대해 자꾸 리마인드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저 역시 장애인 작가의 작업을 볼 때 예술에 대한 관점과 장애에 대한 관점이 섞여 고정관념의 방해를 받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장애예술에는 ‘고유성이 있다’고 말하곤 했는데, 지금은 ‘고유성은 없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저는 작가의 작품을 SNS에 자주 포스팅 한다. 오랫동안 작업을 해온 60세가 넘은 비장애인 작가와 장애인 작가의 작품을 장애 유무를 드러내지 않고 출생년도와 이름만 드러내는 식이다. 이것을 본 지인들은 제가 평소에 장애인 작가와 작품을 많이 하는 것을 알기에 이들이 모두 장애인 작가인 줄 안다. 사람들은 낯설면 장애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절단장애를 가진 신체로 춤추는 것을 처음 봤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워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기이하고 낯선 이미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워한다. 사실 굉장히 모던하고 새로움을 찾는 작업들인데.

고주영 : 사람들은 책을 읽거나 영화나 공연을 보면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나와 공통된 생각이나 경험을 갖고 있는 것에 몰입해서 나의 생각을 강화하거나 나와 다른 생각이나 경험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저는 대체로 전자에 가깝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은 누구일까, 내 편은 누구일까 생각하며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장애인이 창작하거나 공연한 작품을 보러 가면 차이에 대한 발견을 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온다. 우리는 똑같이 30대의 서울에 사는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장애가 있음과 없음에 따라 경험치가 너무 다르다. 예를 들어 서사만 봤을 땐 사소한 연애문제일 수 있지만, ‘시설’에 있었다는 전사가 나오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사소한 문제가 아니게 된다. 장애 창작자의 공연을 보면서 경험치가 서로 다르고 신체성이 다른 것에서 오는 차이를 계속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면서 이 사회가 얼마나 비장애인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었는지, 장애인이 얼마나 차별을 받고 권리를 박탈당하는지 들여다보게 된다.

확장되는 질문으로 나아가는 접근성

박지선 : 창작을 매개하는 활동과 장애 예술을 얘기하다 보면 접근성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2019년에 영국 장애인 극단 그라이아이의 접근성 워크숍에 참여했었다. 단계별로 수어로 자기를 표현하는 방식과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관한 내용이다. 극장 무대에 동그랗게 둘러서서 의견을 나누는데, 사람들이 활발하게 의견을 내지 않고 조용한 상태였다. 그때 그라이아이의 워크숍 리더가 갑자기 무대감독에게 “조명을 좀 낮춰주세요”라고 요청하고, “다같이 모이세요”라고 말하며 우리를 극장의 구석으로 몰고 갔다. 약간 어두운 상황에서 아늑한 분위기가 되니 사람들이 자기 얘기를 하게 되는 모습을 보았다. 물리적 접근성뿐만 아니라, 어떻게 사람들이 더 대화하게 하고 자기를 표현하게 할까, 어떤 환경을 만들어야 사람들이 편안해할까 하는 고려가 몸에 배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던 경험이었다. 접근성 측면에서 장애 예술가가 창작 과정에서 창작의 주체로 설 수 있으려면 어떤 것을 고려해야 할까. 그리고 장애 예술인과 비장애 예술인 협업에서는 어떤 것을 고려해야 할까.

강보름 : 연출가로서 작업할 때 물리적 접근성을 포함해서 심리적 안전감, 심리적 접근성은 장애인 창작자만이 아니라 비장애인 창작자까지 포함해 서로를 위해 필요한 작업이었다. 저는 미투 운동을 계기로 사람들과 함께 프로덕션 규칙 같은 것을 만들고 연습을 시작한다. 이러한 규칙이 작업자에게 꼭 지켜야 하는 강박이 아니라 심리적 안정감을 위한 기제로 작용하는 것을 많이 느꼈다. 기초적인 물리적인 접근성부터 시작해서, 장애 감수성이 없는 상황을 직면할 때면 물꼬를 트는 것을 포함한 작업을 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많이 배우게 된다. 7월말 개막하는 공연을 준비하면서 대사량을 놓고 어떻게 언어장애가 있는 배우를 고려할지, 관객은 어떻게 잘 들을 수 있을지 방법을 함께 고민했는데, 이때 엄청 솔직하게 동료 배우들과 터놓고 얘기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고려’하는 것과 ‘배려’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우리는 통상적으로 ‘배려’라고 생각했던 것을 안 해보기 시작했다. 배우들이 몸을 풀고 입을 푸는 방법을 장애인·비장애인 상관없이 해보기도 하고, 낭독할 때 시간이 많이 걸려도 반복해서 들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편견으로 인해 놓칠 만한 부분을 확인하고, 놓친 곳은 피드백 받으면서 방향을 수정하기도 했다. 그런 과정이 재미있었다. 심리적 안정감에 관련해서는 의사소통 방법이나 방식, 개인의 취향 같은 사소한 것까지 물어본다. 연극 작업을 하다보면 공연을 무대에 잘 올려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프로세스에만 집중하게 되고, 고유한 작업자 개인에 대한 관심을 놓치기 쉽다. 비건 도시락 수요를 조사해서 같이 주문하기, 연습실을 빌릴 때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턱이 없는 연습실을 빌려야 하는 상황에서 장애인 동료도 자신 때문에 비장애인 동료가 사서 고생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불편감 없이 요구하고 불편감 없이 요구를 수용하기 등 모든 게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부분은 기본적인 의사소통 태도가 되어 있어야 가능하기에, 의사소통 연습까지도 제작방법론 또는 제작 과정 안에 있어야 되는 것 같다.

이지혜 : 작가들은 자기 작업실이 있어서 언제든 다음에 와서 작업을 이어서 진행할 수 있어야 영감이 올 때 집중해서 작업할 수 있다. 작가들이 전문가나 보호자(대체로 부모) 없이 혼자 작업하다 보면 그리라는 것을 그리게 된다거나 수동적인 입장에 처하게 된다. 작업에 몰입하다보면 자기 방에만 머물게 되고, 혼자 작업할 때 퇴행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공용 작업실이 있어야 한다. 하루의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작업실에서 언제든 동료를 만나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기관에서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경우에도 기관 담당자나 내부 인력이 출근하는 시간에만 작가들이 작업실에 올 수 있고, 출근하는 시간에만 관리하는 형식은 안 된다. 그게 제가 생각하는 작가 중심 스튜디오의 모습이다. 그렇게 공간이 만들어졌으면 사람들이 많이 와야 한다. 작가들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에서 다른 세계를 계속 유입시키고 연결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예술은 결국 과정과 행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지원이 중요하다. 전문성이나 기술 지원이 아니라 네트워크나 인프라 같은 사람 자체의 연결이 중요하다. 지금 가장 중요한 예술 혹은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예술을 잘 다루는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이들에게도 관심이 많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주는 것이다.

박지선 : 창작의 매개 활동에 있어서 세계와 연결은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창작의 세계에 들어오는 사람이 다른 창작자일 수도 있고, 평론가일 수도 있다. 그리고 창작 이후에 관객을 만나는 데 있어서 물리적 접근성뿐만 다른 측면도 있을 것 같다. 또 어떤 방식의 접근성을 고려해야 할까.

고주영 : 공연장 혹은 공연에 대한 물리적 접근성에 대한 고민은 연극에서도 아직 굉장히 일부이다. 그런데 그것이 점점 매뉴얼화되고 있는 것 같다. 가 닿을 대상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은 채, 우리가 해야 될 몫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게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저희가 3년짜리 중장기 워크숍 프로젝트를 하면서, 2년차에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릴랙스드 퍼포먼스 개발 측면에서 배리어프리 공연을 이야기하는데, 여기에도 매뉴얼화된 가이드가 많았다. 암전을 두지 않는다, 오는 길을 설명해줘야 한다 같은. 여기에 의구심이 들면서 발달장애인과 함께 연극 관람모임과 작은 연극 만들기 워크숍을 했다. 관람 모임을 해보니 신체적으로 공연장까지의 이동에는 문제없었다. 조력을 받건 혼자서 오건 대학로의 공연장까지 올 수 있는 사람은 말로 표현되는 연극도 잘 이해했다. 공연 중간의 암전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사실 매뉴얼의 가이드는 하나도 들어맞지 않았던 거다. 발달장애의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에 누군가 특정 사람에게는 그 매뉴얼이 들어맞겠지만, 이들에게는 아무것도 배리어가 되지 않았다. 정작 문제는 이들을 위해 쉽게 공연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정보 접근성이 일단 떨어지고, 연극 장르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고, 정보를 쉽게 풀어주었을 때도 어떤 맥락을 가지고 공연을 결정할지 이 안에 이미 너무 많은 배리어가 있다. 예를 들면, 방구 안 뀌고 트름을 참을 수 있는 자기의 시간은 1시간 반이라거나, 시설에 살았기 때문에 판타지 연극을 좋아하는 등의 자기 맥락이 있는데, 이런 것은 다 빼고 물리적 접근성만을 확보했다고 해서 이들에게 배려와 배리어프리, 릴랙스드 퍼포먼스라고 설명할 수 있나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더 넓은 범위에서 그들의 삶까지도 고려하는 것이 접근성에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

강보름 : 제가 연출로서 작업하는 경향성은 두 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다. 작가의 희곡을 드라마화해서 무대화하는 것과 다큐멘터리 공연처럼 당사자의 삶을 연극 무대화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후자의 경우 배우가 어떤 질문을 가지고 어떤 이야기로 사람들과 만나고 싶은지를 같이 찾고, 그것이 관객과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를 같이 찾는 게 연출의 역할인 것 같다. 그럴 때면 항상 당사자성과 관련해서, 이 질문이 관객에게 의미가 있는 질문인가, 혹은 어떤 새로운 전환이 생기는 질문인가이다 생각하게 된다. 창작자와 협업을 할 때, 무조건적인 당사자성을 벗어나서 장애인 창작자 본인이 가진 이야기나 질문이 어떻게 들리는지 재해석하고 이야기 나누며, 필요하다면 환기에 대해서도 같이 고민해야 한다. 당사자가 공연에서 던진 질문이 꼭 필요한 질문이었는지, 그 공연이 장애인 관객에게도 필요한 공연이었는지 생각해보게 된 공연이 있었다. 생물학적 당사자성에 국한되는 질문을 던진 경우 어쩌면 장애인 관객에게는 상처가 되는 질문이었을 수도 있다. 장애인 관객을 만나는 것과 비장애인 관객을 만난다는 것이 아주 다른 것은 아니지만 당사자의 삶을 다루고 무대화할 때는 연출가로서 정치적 당사자성 혹은 사회적 당사자성으로 확장되는 질문으로 나아가도록 고려해야 하는 지점을 생각하게 되었다.

동료 시민으로 공존하기

박지선 : 장애를 알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는 시간의 경험이 필요하고, 같이 창작하고 함께 소통하고자 하는 사람 개개인의 고유성을 알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물리적 접근성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태도의 변화 없이 매개 인력도 정책 용어로만 사용되고 모든 것이 기계적으로 매뉴얼화되는 것에 대한 문제점도 말씀해주셨는데. 장애예술 매개 활동에서 필요한 역할과 지원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지혜 : 현재 진행중인 전시 <길은 너무나 길고 종이는 조그많기 때문에>는 발달장애와 정신장애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데, 몇 작가의 작업과정과 삶을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기획 당시에는 영상이 너무 설명적이 될까봐 우려도 있었는데, 전시 관객이 남긴 리뷰를 보면 발달장애인의 움직임과 행동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 같아 좋았다. 0.3미리의 연필로 세밀하게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경우 손목이 아파 한 번씩 손목을 돌리는 장면이나, 시설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아무렇지도 않게 달라고 해서 주고나면 소진되는 느낌이 들어 작업하기 싫다고 말하는 장면 같은, 작가라면 공통적으로 느꼈을 감정과 삶의 모습 등 작가의 발화와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장애 예술가의 작업을 볼 기회도 많지 않고 관객이 일부러 찾는 경우도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사람들이 곳곳에서 장애예술 작가와 작업을 만날 수 있는 기회 혹은 단서를 포진하는 것도 중요하다. 공공에서 장애 예술인에게 더 많은 창작과 발표 기회를 제공해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창작공간에 대한 논의가 많이 나오는데, 미술작가를 위한 스튜디오에 대해 구체적으로 세분화해서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는 자리가 많이 마련되어야 한다. 창작공간의 체계와 시스템, 운영기관 등 인프라 조성과 관련한 이야기는 굉장히 많은데 거시적인 이야기만 하다가 끝나는 느낌이다.

고주영 : 저는 장애인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결국 어떻게 하면 동료 시민으로 같이 잘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서로가 서로를 만날 기회가 더 늘어나야 한다. 공연을 보러 가면 장애인 극단의 공연에는 장애인 관객이 압도적으로 많고 비장애인 극단의 공연에는 비장애인 관객이 압도적으로 만다. 장애인 극단의 경우 신생 단체가 많고 제작자나 기획자를 두지 못하고, 공연티켓도 티켓판매 시스템을 이용기보다는 알음알음 판매한다. 그래서 공연정보를 접하기가 어렵다. 비장애인 예술가도 장애인 예술가의 공연을 보러 가고, 장애인 예술가도 비장애인 예술가의 공연을 많이 볼 수 있어야 한다. 많이 볼 수 있게 해주려면 우선적으로 물리적 접근성이 해결되어야 한다. 여기에 공적인 지원이 들어가야 한다. 특히나 대학로 소극장은 접근성 문제가 절실히 필요하다. 예산을 지원할 테니 알아서 하라는 방식이 아니라, 그러한 장치들이 좀더 완성도 높게 구축되고 잘 활용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강보름 : 저도 두 분 말씀에 동의한다. 큰 틀에서 경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연출가로서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작업을 많이 해보고 싶고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다른 비장애인 동료들에게도 추천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장애인 배우를 캐스팅하면 장애인 관객이 온다. 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해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는 연습실이 폐쇄되어 사용할 수 있는 곳이 몇 개 없다. 대학로 일대 역시 이음센터나 아르코예술극장도 코로나19가 심각할 때는 폐쇄해서 비싼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고, 그렇게도 구하기 어려워 서로에게 미안해지는 경험이 많았다. 0set프로젝트가 꾸준히 접근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왔고 많은 공공기관도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이제는 공공기관도 바꾸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이지혜 : 예전에 해외에서 장애인 배우 에이전시의 매뉴얼을 본 적이 있는데, 인상적인 문장이 있었다. ‘내 아이덴티티를 바꿔서 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언어장애인이면 사이코패스 언어장애인 캐릭터가 있을 수 있고 고루한 언어장애인 캐릭터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시각예술만큼이나 공연예술에서 고려할 지점이 많겠다는 생각을 했다.

박지선 : 창작에서의 매개 활동 관련해서 정책적으로 인력을 양성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다. 그런데 이에 앞서 장애도 알고 예술도 알아야 하고, 물리적·심리적 접근성만큼이나 중요한 게 경험 접근성이라는 것을 공통적으로 말씀해주셨다. 동료 시민으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경험이 쌓여야 장애예술에서의 매개 활동도 활발하게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창작에 있어서 누구와 만날 것인가 어떻게 만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겠다. 장애예술 창작은 한 명이 매개자가 되어 만들어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예산지원이나 인력지원에서 폭넓은 생각과 다양한 지원이 고려되기를 바란다.

강보름

연극연출, 드라마터그, 접근성/배리어프리 매니저. <레디메이드 인생> <모던걸타임즈> <여기, 한때, 가가> 등을 연출했다. 혜화동1번지 7기동인 가을페스티벌 ’맞춤‘ 접근성 매니저, 한일공동연출 프로젝트 <어느 마을> 배리어프리 매니저, <액트리스 원> <액트리스 투> 배리어프리 자문을 맡았다. 웹진 연극人 편집위원(2019)을 지냈고, 국립극단 창작공감 : 2021 ‘장애와 예술’ 연출로 선정되었다.
rkdekdzhd@hnamial.net

고주영

독립 프로듀서, 플랜큐 PD, 한-일 번역가. 장소특정적이거나 다원적인 방식의 공연을 기획하고 만든다. 사회적 소수자 당사자와 함께 무대화하는 데 관심이 있다. 장애 예술 관련하여 연극 <대성당>(2018, 여당극), <장애인 공연장 내 재난대피 워크숍>(2020, 김원영 김지수), <발달장애인 대상 릴랙스드 퍼포먼스 개발 중장기 프로젝트>(2019~현재) 등이 있다. 2019년부터 발달장애인 권리옹호단체 반상근 활동가이다.
breeeeze@naver.com

박지선

연극, 무용, 다원,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걸쳐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 축제, 레지던시 기획, 공연예술작품 제작 및 국제 네트워크를 기획, 운영하고 있다. <포용적 접근의 장애예술 창작 개발과 관객 개발> 리서치 및 워크숍, <무용음성해설(Dance Audio Description> 워크숍 등 기획 운영했다. 도시, 경계, 기술과 예술 등 다양한 주제로 예술가와 새로운 탐험을 하며 동시대성을 탐구하고 있다. 이음온라인 기획위원.
jisunarts@yahoo.com

이지혜

작가와 소규모 전시공간을 사랑하는 독립큐레이터다. 2016년부터 정신적 장애를 가진 작가들과 활동했으며 2019년에는 사단법인 로아트 설립을 주도했다. 문화매개를 공부하며 보다 자유로운 예술 행위를 위한 실천 방법론을 연구 중이다. 사단법인 로아트 기획팀장, 대야미스튜디오 큐레이터로 일했으며, 현재 경희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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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프로젝트 궁리

2021. 8월 (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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